[미스터 페미니즘] 남성 심리학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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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07.02. 오전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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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남자들 시즌 2 - 미스터 페미니즘]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정기연재 시즌 1 [벌거벗은 남자들]이 가부장제 아래에서 왜곡되어 온 남성성에 변화를 모색해왔다면, 시즌 2 [미스터 페미니즘]에서는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일상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남성성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하고 상상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남성에게 씌워지는 성별 고정관념의 틀을 가리켜 '맨박스'라고 부른다.  ⓒ챗GPT 생성 이미지


 요즘 노동요로 불교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마하반야"로 시작하는 꾸불꾸불한 멜로디에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편안함을 느끼는 게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올해 4월에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는 25만 명이 다녀갔다. 오전 9시부터 줄을 섰고, 오후 1시에 현장 접수가 조기 마감됐다. '극락도 락이다' 티셔츠를 사고 목탁을 두드리며 인증 사진을 찍던 사람들 대부분은 절에 다니지 않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에게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하나의 소비문화이자 자기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기회, 또는 자신의 고민을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

박람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에서 보만 스님의 불교심리학 강의를 발견했다. 어느 지식 관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는 본인이 남성 불교심리학을 강의하지만 "남성 심리학 같은 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성 심리학이 따로 없는 이유는 남성이라는 고정된 정체성 자체가 애초에 실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보만 스님은 마음을 '빈 그릇'에 비유한다. 그릇은 본래 이름도 성질도 없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된다. 우리가 남자다움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불교식으로 해석해 보자면 남자다움은 어릴 때부터 받아온 성별 고정관념 교육이 빈 그릇에 쌓인 것이다.

"남자는 울면 안 돼"라는 평생 교육

보만 스님이 군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이야기가 있다. 함께 근무하던 한 남성이 낮에는 "스님이 외로워 보인다"며 농담을 건넸다. 그런데 그는 일주일도 안 돼 술에 잔뜩 취한 채 법당에 찾아와 혼자 108배를 했다. 늦은 밤까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는 울면서 말했다. "스님이 부러워요." 스님은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그 자신은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껏 표현할 '허락'이 없었다. 대신 술이라는 면죄부가 있어야만 자신의 감정을 겨우 나눌 수 있었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보만 스님도 어린 시절 비슷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감정을 드러내면 약해 보이고, 남자는 약해 보이면 안 된다는 논리를 배우는 교육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나중에는 힘들다는 신호가 올라와도 즉시 그 감정이 눌리게 된다. 언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밝힐 자격이 없다고 배운다. 그래서 평생을 슬프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외롭지 않은 척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압력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터진다. 술자리에서는 주정으로, 관계에서는 폭력으로.

고정된 나는 없으니 무엇을 담을지 선택하면 된다

성평등 교육에서는 이것을 '맨박스'라고 부른다. 남성에게 씌워지는 성별 고정관념의 틀이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 서열에서 위여야 한다." 보만 스님의 언어로 하면 빈 그릇에 차곡차곡 담긴 기억들이다. 불교 용어로는 무아(無我)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고정된 '나'라는 실체는 없고,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남성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 위에 무엇이 얹혔든 절대적이거나 운명적이지 않다. 원하는 것을 다시 담을 수도 있고, 그것이 꼭 남성다움이 아니어도 괜찮다. 담긴 것은 언제든 다시 바꿀 수 있다.

맨박스를 다루는 성평등 교육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내가 그 틀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둘째, 그 틀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나를 괴롭히고 남을 괴롭히는 행동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 셋째, 남성이라는 젠더화된 틀을 벗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감정을 표현하며 타인을 평등하게 대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 보만 스님의 불교심리학과 놀랍도록 닮았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

그런데 변화는 교육만으로 오지 않는다. 친구가 필요하다. 나에게 그런 존재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에서 20대 중반부터 같이 활동해 온 친구들이다. 우리는 만나면 연애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관계에서 힘들었던 것, 서운했던 것, 잘못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주는 조언은 결국 비슷하다. 솔직한 느낌을 나누는 것만큼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것도 없고, 자연스레 주변에서 다양한 도움을 얻을 가능성이 열린다.

이런 조언과 성찰이 가능한 건 우리 공동체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멍청해 보여도 밀려나지 않는다는 안정감이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보만 스님이 "남성들에게 친구가 필요하다"고 할 때의 그 친구는 실수해도 기회를 더 주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배우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따끔하게 혼도 내주되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를 말한다. 그것이 남성이 맨박스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다. 그런 공간과 문화를 사회 곳곳에 만드는 것이 새로운 남성성을 꿈꾸는 이들이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이다.

오늘도 나는 일하면서 불교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지만 점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오래된 기억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자, 나라는 빈 그릇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워 주기 때문이다. 불교가 말하는 무아도, 페미니즘이 말하는 맨박스 해체도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고정된 나는 없다. 고정된 젠더도 없다. 남성다움은 얼마든지 다시 쓰일 수 있다.

김태환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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