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얼굴에는 간만에 기대감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지역 활성화 대책을 모색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일까. 올해 슬로건인 ‘희망’은 조심스럽고도 소중한 기대다. 지역 위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이지만, 한때 ‘돈이 거리에 굴러다닌다’는 말까지 만들어낸 영월이 위기를 맞은 과정은 특히 불평등한 권력 구도 속에서 일어났던 탓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소 양측이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려나가던 냉전 시기, 미국 상무부는 소련과의 장기 대치 상황을 가정해 미국이 사용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조사한 뒤 1956년 보고서를 발간한다. ‘코리아’라는 항목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영월의 상동광산은 한국의 텅스텐 매장량 중 90%를 차지한다.” 텅스텐은 미사일, 장갑차, 총알에까지 쓰이는 핵심 군수물자다.
‘군수물자’로 미국의 관심 대상에 오른 영월은 남한 군사정권의 관심 지역이기도 했다. 일제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당시 활발히 운영되던 텅스텐 광산은 ‘근대화’를 명분으로 장기 집권을 시도한 독재자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영월은 풍부한 석탄 자원까지 보유했으니, ‘수출’이라는 단어에 혈안이 된 독재자들이 영월을 치켜올리며 주목할 이유는 충분했다.
‘단종제’의 성장 역시 궤를 같이한다. 단종제가 열리는 벚꽃 철이면 ‘중앙’ 정치권 인사들도 때가 됐다는 듯 영월을 찾았다. 1968년에는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1970년에는 정일권 국무총리가 방문했고, 1971년 제5회 행사에 참석한 백두진 국무총리는 박정희의 ‘업적’을 다섯 번에 걸쳐 찬양했다는 〈동아일보〉 기사가 남아 있다. 주민 입장에서도 수출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지역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상, 중앙정부의 관심이 곧 살길이었다.
‘촌장 흥도’의 모습이 오늘날에도 보이는 까닭
지역은 국가에 묶여 있지만 ‘국가’를 움직이는 권력은 지역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과 먼 곳에 위치한 구도. 과연 2026년 오늘이라고 변했을까. 영화 ‘왕사남’에는 영월의 한 마을 촌장인 흥도가 자신의 마을을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울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곧 지역에 밥과 물자가 흘러 들어온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서사에는 늘 현재의 정치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국가사업’을 하나라도 더 유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지역의 현실, 그리고 선거철마다, 유행이 돌아올 때마다 ‘반짝’ 주어지는 ‘전국적인’ 관심에 목매야 하는 지역의 오늘이 꼭 겹쳐 보이지 않는가.
영화의 또 다른 주요한 주제는 한양의 권력 암투에 상처받고 돌아온 어린 홍위를 마을 사람들이 극진히 먹이고, 재우고, 살리는 ‘돌봄’이다. 돌봄은 홍위를 일으키고, 마을 사람들 서로를 잇고, 공동체를 살린다. 과연 영월은 ‘왕사남’의 관심이 식은 이후에도 ‘희망의 서막’을 열 수 있을까? 희망의 주체가 국가 아닌 주민이 된다면,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살릴 수 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