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에 고립된 푸틴의 ‘불침항모’ 크림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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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07.09. 오전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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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로·에너지망 집중 타격… 종전 협상용 압박 카드로 부상

6월 10일(이하 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드론이 크림반도에 있는 건물을 공격해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뉴시스
크림대교는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주와 크림반도 케르치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케르치 다리’로도 불리며, 복선 철도교 18.1㎞와 왕복 4차로 도로교 16.9㎞로 구성된 유럽에서 가장 긴 교량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무력 점령해 강제 병합한 후 이곳을 영원히 자국 땅으로 만들고자 2018년 35억 달러(약 5조3400억 원)를 들여 이 다리를 지었다. 크림대교는 이후 러시아 본토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잇는 보급로이자 병참기지 역할을 해왔다.

비상사태 선포한 크림공화국
우크라이나군은 6월부터 하루 평균 100회 넘는 드론 공격으로 크림반도의 도로, 철도, 연료 저장시설, 발전시설, 항만, 통신망 등 핵심 기반시설들을 타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크림반도 공격은 러시아에 종전을 압박하기 위한 ‘40일 작전’의 일환이다. 주목할 것은 우크라이나군이 이번 공격 대상에서 크림대교만 제외했다는 점이다. 이는 크림반도에 사는 러시아 출신 주민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려는 포석이다.

크림반도 인구는 현재 24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인구조사에 따르면 주민 중 65.2%가 러시아인이다. 그 외 우크라이나인 16.1%, 타타르인 12.6% 등이 함께 산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 계속되자 러시아 출신 주민들은 앞다퉈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다. 크림대교의 러시아 방향 2차선 도로가 자동차로 꽉 메워졌을 정도다. 반면 반대편 도로, 즉 크림반도로 들어오는 방향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다.

러시아 정부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후 자국 주민에게 각종 혜택을 주면서 이주를 독려해왔다. 이를 잘 아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출신 주민들을 쫓아내려고 크림반도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임명한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행정수반은 6월 26일(이하 현지 시간) 미하일 라즈보자예프 세바스토폴 시장과 협의한 뒤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세바스토폴은 크림반도의 항구 도시다. 우크라이나군이 연료저장시설과 발전시설을 드론으로 공격하면서 이 지역 전기 공급이 끊겼고, 크림반도 주민들은 수도와 대중교통 등 기본적인 공공서비스 이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습경보와 정전은 일상이 됐다. 상점들은 오후 8시면 문을 닫는다. 크림공화국은 휘발유가 부족해지자 민간인 대상 연료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배급제로 전환했다. 암시장에선 휘발유가 국영주유소 가격의 6배가 넘는 L당 500루블(약 1만 원)에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크림반도 주민들이 극심한 연료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 지역에 자체 원유 생산이나 정유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크림대교는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주와 크림반도 케르치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 이후 러시아 출신 크림반도 주민들은 이 다리를 이용해 크림반도를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
크림반도 경제를 떠받치던 관광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여객선이 운항을 멈추고 기차 운행이 중단된 데 이어 주유소마저 문을 닫으면서 지난해 최소 700만 명에 달했던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고 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국민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여름철 휴양지다. 우크라이나군의 공습에 크림반도 여름 관광 시즌은 시작도 전에 끝나버렸고, 예약의 90%가 취소됐다.

우크라이나군은 방공망 무력화, 보급로 차단, 에너지망 타격 등 3단계 드론 공세로 러시아군을 크림반도에서 몰아붙이고 있다. 6월 25일에는 1억 달러(약 1520억 원) 상당의 러시아군 네바-B 레이더를 드론으로 파괴했다. 러시아는 탐지거리 595㎞에 달하는 이 레이더로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을 감시해왔다. 우크라이나군은 또 크림반도의 방공 시스템과 레이더를 대거 타격해 가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3단계 드론 공세로 러시아군 몰아붙여
우크라이나군은 보급로 차단에도 나섰다.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핵심 통로는 크게 3곳으로, 우크라이나군은 크림대교를 제외한 2곳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연료·탄약·병력 운송의 핵심 통로 구실을 하는 ‘R-280 노보로시야’ 고속도로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뢰 살포, 드론 공격으로 해당 도로 기능을 마비시켰다. 2023년 개통된 노보로시야 고속도로는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아조우해의 해안 도시들을 따라 마리우폴과 멜리토폴을 거쳐 크림반도 북부로 이어지는 육상 보급로로, 크림반도의 물류 생명선 역할을 해왔다.

또 다른 핵심 통로는 러시아가 점령 중인 헤르손주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핵심 구간인 촌하르 다리다. 촌하르 다리는 육지 사이를 잇는 좁고 잘록한 땅인 페레코프 지협(地峽·isthmus)을 통해 크림반도와 헤르손을 연결한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이곳에 임시로 설치한 부교마저 드론으로 타격해 파괴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군은 크림반도 동쪽 끝 케르치항의 유류터미널과 케르치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러시아 본토 카프카스항 유류저장고를 동시 타격했다. 아조우해에서 크림반도로 연료 7000t을 운송하던 러시아 선박 2척도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 크림반도의 연료 부족 상황이 심각해지자 푸틴 대통령은 6월 29일 “해로와 육로를 통해 크림반도에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HUR)은 7월 4일 “크림반도 벨베크 공군기지에 있던 러시아군의 MiG(미그)-29 한 대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작전은 무인 시스템 부대가 세바스토폴 인근 벨베크 군용기지를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라며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MiG-29는 러시아가 운용·수출하는 대표적인 4세대 쌍발 전투기로 근거리 공중전(도그 파이트)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이 전투기 가격은 대당 수천만~1억 달러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12월에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외곽에 있는 카차 공군기지에서 해당 전투기를 파괴한 바 있다.

6월 12일 크림반도 주유소앞에 차들이 줄 지어 서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으로 휘발유가 부족해지자 크림공화국은 민간인 대상 연료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
이 같은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공세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주요 업적으로 내세워온 크림반도가 가장 큰 군사적 부담이 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강제 병합 이후 크림반도를 ‘불침항모’라고 불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압박 지렛대로 만들려 한다”면서 “이 지역에 큰 고통을 가해 푸틴 대통령이 종전에 동의하도록 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동남부 전선은 요새화된 진지와 촘촘한 드론 감시망으로 장기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오랜 소모전으로 병력과 무기 부족이 심각한 우크라이나가 지상군을 투입해 전선을 돌파하거나 점령지를 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크림반도를 집중 공격하는 것은 러시아의 전쟁 지속 능력을 떨어뜨리고 방어 부담을 높여 전장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푸틴 대표 업적’에서 군사적 부담으로 전락
남부 전선의 병참을 교란하려는 목적도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물류 허브이자 전선의 거점인 크림반도에 크게 의존해왔다”며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를 활용하는 러시아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약화할 수 있다면 러시아군 작전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크림반도를 러시아 본토와 분리해 섬으로 만드는 ‘도서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에서 크림반도로 향하는 물자 공급선이 끊기면서 크림반도는 사실상 고립됐다”고 지적했다. 크림반도는 푸틴 대통령에게 단순한 점령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함으로써 러시아제국과 옛 소련의 영광을 회복할 강력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고립해 섬으로 만든다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도 큰 손상을 입게 된다. 크림반도는 푸틴 대통령의 업적 가운데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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