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전장의 최전선을 가다
노원 부동산중개사의 하루
2026년 대한민국의 30대가 ‘부동산 전쟁터’에 내몰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아파트를 사려는 이들이 서울과 경기도 곳곳을 맴돌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 강의를 찾아 듣고 부지런히 임장(臨場·현장 탐방)도 다닌다. 매매계약서를 쓴 이들도 조여오는 대출 규제에 자금조달 계획을 수정하며 골머리를 썩는다.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은 2주 동안 수도권 주요 단지와 빌라촌 공인중개사 사무실, 유명 부동산 강의 현장, 임장 스터디 현장 등에서 30대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16일 오전 7시30분 서울 노원구 미성합동공인중개사 사무소 앞, 김우정 대표가 불을 켜고 분주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이곳은 최근 30대 매수율이 높았던 ‘미미삼’(미성·미륭·삼호3차) 단지를 주로 거래하는 곳이다. 기자가 머문 12시간 동안 30대 매수 희망자가 계속 들어왔다. 저마다의 사정은 달랐지만 불안감만큼은 공통적으로 읽혔다.
“사장님 저 미미삼 다시 꼭 올게요.” 오전 10시, 30대 남성 A가 손을 꽉 쥐고 이 같은 다짐을 하며 부동산을 나섰다. 2년 동안 미미삼에서 전세를 살던 A는 만기가 되자 연장을 고민하다 최근 인근 중계동 한 아파트 매수를 결심했다. 이날은 A가 전세를 빼는 날이다.
A는 사실 2년 전부터 미미삼 매수를 고민했었다. 매수 타이밍을 놓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진짜 그때 미미삼에 오려고 했는데 고민하다 보니 2년 만에 3억원 넘게 올랐네요.”
김 대표가 말했다. “30대 매수자들은 막상 사려고 할 때 최고점에서 사는 것 같아 망설이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 1억원이 올라 나중에 후회하며 힘들어해요.”
오전 11시 30대 초반 남성 B가 서류 뭉치를 든 채 미성부동산에 들어왔다. 이날은 B의 잔금 치르는 날. “지금 시기가 아니면 집을 구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빠르게 결정했어요.” 서울 서초동이 본가인 B는 결혼을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집을 알아봤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불안한 마음만 커졌다.
“전월세 계약서만 보다가 제 집을 계약하니 기분이 남다르긴 한데 오히려 평범한 느낌이에요.” B가 마지막 서류의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계약했을 때보다 1억원이 올랐다’고 격려하는 김 대표 말에도 B씨 표정은 가볍지 않았다. “그게 제 돈인가요? 이제 빚 갚아야죠.”
오후 2시 30대 여성과 60대 여성이 설렘 반 기대 반 표정으로 살짝 열린 1004호 문으로 들어간다. 신혼집 2차 계약금을 내고 집 상태를 보러 온 1988년생 C와 어머니다. 세입자가 나간 후 새로 계약한 집에 하자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보러 왔다.
C는 지난해 매물 품귀 현상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빠르게 이 집을 계약했다. “시세보다 싸게 나왔는데 같이 집을 본 다른 커플들한테 뺏길까 싶어 급한 마음에 바로 계약했어요. 지금 집을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매수엔 성공했지만 대출이 걱정이다. “인테리어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출이 막힌다고 해서 그게 걱정이에요.” C의 얘기를 듣던 어머니가 말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한테는 생애 최초 대출 같은 건 그대로 해줘야지 정부가 그것까지 조정하면 어떡해요. 가혹하게 사다리를 걷어차지 말아주세요. 이건 생존 문제예요.”
“6억원 풀(최대한)로 대출받고 주식, 회사대출, 신용대출, 퇴직금 더하면 7억4500만원 정도 모아지고, 저 비트코인도 팔았어요.” 오후 4시, 김 대표 앞에 나란히 앉은 90년대생 신혼부부 D와 E가 자금 조달 계획을 줄줄 늘어놓고 있다.
부부를 부동산 매수로 이끈 건 역시 ‘생존 본능’이다. “정부는 실거주를 강조하는데 요즘 집값이 실거주가 실거주가 아니에요. 영혼에 영혼까지 끌어와야 집을 살 수 있거든요. 집 알아볼 땐 8억~9억원이었는데 지금 10억원이 됐어요.”
계약 후 사라질 줄 알았던 불안감은 부담감이 다시 채웠다. “대출이 너무 부담됩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5%가 말이 그렇지, 연봉의 절반을 빚 갚는 데 써야 하는데 피로감이 엄청나요.” 집을 계약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집을 산 게 아니에요. 대출이 나와야 집을 사요.”
“오늘 처제 생일인데 매수 손님 온다고 해서 못 가고 있네 허허.” 오후 6시30분, 40대 여성 F가 헐레벌떡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아침부터 김 대표에게 전화해 ‘내일 매물 계약하러 가겠다’며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던 이였다. 집주인이 물건을 거둬들이거나 다른 사람이 채어갈까 봐 불안해서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온 것이다.
그러나 F의 불안한 예상은 적중했다. 집주인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매물을 거둬들였다. F가 호가보다 2000만원 더 올려서까지 사겠다고 했지만 집주인은 단호히 거절했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요즘 매물을 거둬들이는 집주인이 많다고 한다.
오후 8시, F는 1시간30분을 앉아 있다가 별 소득 없이 부동산을 나섰다. 김 대표가 부랴부랴 다른 부동산에 매물을 수소문했지만 마땅한 물건은 없었다. “사장님 물건 나오면 꼭 전화 주세요. 다른 사람한테 말고 저한테 꼭 알려주셔야 해요.” F는 나갈 때까지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부동산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매일을 사는 김 대표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힘들죠? 그런데 여기 부동산에 온 사람들은 모두가 다 힘들어요. 그들 사정을 들어주고 최선의 물건을 찾아주려고 하는데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쉽지 않아요.”
